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일톤 세나 (문단 편집) === 세나와 혼다의 관계 === 현재에 이르러서는 위에서 설명한 맥라렌 세나의 예와 같이 맥라렌이 가장 세나 관련 마케팅에 열심이지만, 정작 세나의 커리어에서 가장 큰 영향을 주고받은 회사는 다름 아닌 [[혼다]]였다. 세나의 맥라렌 커리어의 시작 자체가 자신이 운전하던 로터스에 혼다 엔진이 탑재 되면서 물꼬가 트인것이였으며, 이 때 부터 혼다의 엔지니어들은 세나의 레이스에 대한 접근 방식에 반해 있었다고 한다[* 세나에게 반한것은 혼다의 엔지니어들 뿐만이 아니였는데, 88년 이후로 일본에서 세나는 최고의 F1 스타였다. 세나가 일본을 방문했던 당시에는 일본 여성팬들을 몰고다니고는 했으며, 위에 나온 T-Square의 헌정곡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당시 맥라렌에서 일하던 관계자가 세나와 프로스트의 차이점의 대해 언급한 것에 따르면 "프로스트는 혼다 엔진을 사용하는 맥라렌의 드라이버였고, 세나는 맥라렌 섀시에 탑재된 혼다의 드라이버였다"고 하며, 이는 알랭 프로스트가 이후 당시를 회상하며 인터뷰한 내용에서도 등장하는 내용으로, 프로스트 역시 이러한 표현에 크게 동의하였다. 특히 당시 혼다 F1의 엔지니어로 활동하던 사람중에는 카와모토 노부히코가 있었는데, 이후 고위직을 거친 그가 90년에는 혼다의 회장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혼다로서도 세나를 노골적으로 편애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특히 카와모토는 프로스트와의 만찬에서 프로스트가 혼다가 세나를 편애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고 전하자, 혼다 엔지니어들이 세나를 더 좋아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고 전해준 바도 있다. 이렇듯 프로스트와 세나가 맥라렌에서 경쟁하던 당시 혼다는 세나를 눈에 띌정도로 우선시 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이는 프로스트가 89년을 끝으로 맥라렌을 떠나는데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혼다가 세나를 사랑한만큼 세나에게 있어서도 혼다와의 관계는 중요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92년 당시 혼다가 몬자에서 열리는 이탈리아 그랑프리 동안 공식적인 철수를 발표하자, 이에 관해 질문하는 기자와의 인터뷰 직후 돌아서며 눈물을 흘린바 있다. [youtube(EX1Q-90LfpI)] 이러한 혼다와의 관계 때문에 멕라렌 시절 [[혼다]]의 명차 [[혼다 NSX|NSX (NA1)]]의 개발에 참여해 매우 큰 도움을 주었다. 특히 그가 빨간색 NSX를 하얀 양말과 로퍼를 신고 한계까지 몰아붇히는 영상은 아직도 매우 유명하며, 특히 해당 영상에서는 그의 뛰어난 풋워크와 특이한 쓰로틀 컨트롤 방식을 볼 수 있다. 본인도 마음에 들었는지, 개인적으로 한 대를 소유 했을 정도다. 이런 점에서 NSX는 세나의 헤리티지를 상징하는 명차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youtube(uBKbxZktw34)] 한편 혼다에서도 세나 관련 마케팅을 안 하는 것은 아닌데, 가장 대표적으로 위의 브랜드 CM, "Sound of Honda"가 있다. 세나가 달렸던 [[스즈카 서킷]]을 빛과 소리로 재현한 영상일 뿐이지만 이 영상은 아직도 그를 기억하고 있는 수많은 F1 팬들을 울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